프랑스 관광청이 집계하는 연간 방문객 수에서 파리와 코트다쥐르가 차지하는 비중은 압도적이다. 하지만 정작 프랑스인 스스로가 가장 사랑하는 휴가지 목록에는 늘 다른 이름이 올라온다. 바로 알프드오트프로방스와 오트잘프에 걸친 프로방스 북부 산악 지대다. 이 지역에는 해마다 여름이면 곡식의 수확을 기념하는 작은 마을 축제가 열린다. 이 축제들은 어느 관광 안내 책자에도 실리지 않지만, 프랑스의 진짜 일상과 만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통로다. 실속을 따지는 여행자라면 대도시의 비싼 카페 대신 이곳 산악 마을의 축제 한가운데로 향하는 편이 낫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프랑스의 진짜 문화를 가장 저렴하게 체험하는 방법은 지방의 지역 축제를 찾는 것이다. 파리 시내 호텔 1박 비용으로 프로방스 산악 마을에서는 일주일간 현지인과 어울리며 먹고 마시고 즐길 수 있다. 특히 밀 수확이 끝나는 7월 중순부터 8월 말까지, 이 지역에서는 마을마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수확을 축하하는 축제가 이어진다. 이 글에서 소개하는 시기별 축제 일정을 따라가다 보면, 관광객으로서가 아니라 잠시 이곳에 사는 사람처럼 프랑스를 경험하게 된다.
왜 하필 프로방스 산악 지대일까. 이 지역은 해발 고도가 높아 여름에도 서늘하다. 지중해 연안의 습한 더위와는 전혀 다른 기후다. 라벤더 밭으로 유명한 발랑솔에서 동쪽으로 더 깊이 들어가면, 석회암 절벽과 소나무 숲이 어우러진 고지대가 펼쳐진다. 이곳 마을들의 공통점은 인구가 적고, 젊은이들은 도시로 떠났지만, 여름만 되면 가족들이 돌아와 축제를 준비한다는 점이다. 축제의 주인공은 관광객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입장료가 없거나 있더라도 몇 유로에 불과하고, 음식과 와인의 가격도 시내 시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7월 중순, 가장 먼저 열리는 축제는 고지대 마을의 보리 수확제다. 이 마을에는 인구가 수백 명도 채 되지 않지만, 축제 기간이 되면 인근 마을에서 온 사람들로 광장이 가득 찬다. 축제의 핵심은 전통 방식으로 빵을 굽는 공개 행사다. 마을 한가운데 있는 공용 화덕에 장작불을 지피고, 아침 일찍 반죽한 빵을 밀짚으로 덮어 굽는다. 빵이 구워지는 동안 마을 사람들은 직접 만든 염소 치즈와 허브를 곁들인 전채 요리를 내놓는다. 이때 주목할 만한 점은 이 모든 음식이 마을 공동체의 자발적인 참여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이다. 관광객에게 파는 장사가 아니라, 마을의 풍요를 함께 나누는 자리이기 때문에 가격이 놀라울 정도로 저렴하다.
8월 첫째 주가 되면, 이번에는 밀 수확의 절정을 맞은 마을에서 더 큰 규모의 축제가 열린다. 이 축제의 백미는 저녁에 열리는 공동 만찬이다. 마을 광장에 긴 나무 테이블을 늘어놓고, 각 가정이 한 가지씩 요리를 내놓는다. 어떤 집은 프로방스식 토마토 요리를, 어떤 집은 양고기 스튜를, 또 어떤 집은 직접 담근 피클을 가져온다. 만찬의 입장권은 1인당 몇 유로 수준으로, 여기에는 무제한으로 제공되는 빵과 식전주가 포함된다. 와인은 마을 지하 저장고에서 꺼낸 지난해 수확물이다. 도시의 레스토랑에서 이 정도 코스를 즐긴다면 수십 유로는 기본이지만, 이곳에서는 그 몇 분의 일만으로도 훨씬 풍성한 식사를 경험할 수 있다.
이 축제들에서 주목할 또 다른 매력은 일정이다. 축제는 단순히 음식을 먹고 끝나는 행사가 아니다. 오후에는 마을 주변의 밀밭과 허브 농장을 걷는 투어가 진행된다. 현지 농부가 직접 길을 안내하며, 올해 수확량과 기후 변화로 인한 어려움을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투어가 끝나면 마을의 작은 예배당이나 마을 회관에서 지역 장인들이 만든 공예품을 구경할 수 있다. 라벤더 오일, 꿀, 건조 허브, 수제 비누 같은 물건들이 시내 상점보다 훨씬 합리적인 가격에 판매된다. 이는 중간상인을 거치지 않고 생산자에게서 직접 사기 때문이다.
8월 중순이 지나면, 산악 마을 축제는 또 다른 국면에 접어든다. 이 시기에는 밀 수확이 끝나고 포도 수확 직전이라, 마을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다. 이때 열리는 축제는 음악과 무용이 중심이 된다. 마을 광장에는 임시 무대가 설치되고, 프로방스 전통 악기인 갈루베와 탬버린 연주가 펼쳐진다. 파리나 마르세유에서 활동하는 젊은 연주자들이 고향 마을로 돌아와 공연을 펼치는 경우도 많다. 이들의 연주는 전자 음향 없이 오직 어쿠스틱으로만 진행되는데, 석양이 지는 산등성이를 배경으로 울려 퍼지는 선율은 도시의 어떤 공연장보다 인상적이다. 공연의 입장료는 없고, 대신 관객은 현지에서 만든 음료나 과자를 사서 즐기면 된다.
이 축제들을 경험하기 위해 꼭 알아야 할 실용적인 정보도 있다. 이 지역은 대중교통이 편리하지 않으므로, 렌터카를 이용하는 것이 기본 전제다. 마을과 마을 사이는 차로 20분에서 40분 정도 걸린다. 숙소는 축제가 열리는 마을보다는 인근의 조금 큰 도시에 잡는 것이 현명하다. 아침에는 시장이 열리고, 저녁에는 축제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일정을 짜면 더 효율적이다. 이 지역 시장에서는 현지 농산물을 매우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다. 특히 여름철에는 호박, 가지, 토마토, 허브가 한 바구니에 1유로 안팎인 경우도 있다. 이를 활용해 숙소에서 간단히 요리하면 식비를 거의 들이지 않고도 여행할 수 있다.
프랑스어를 전혀 할 줄 몰라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축제 현장에서는 손짓과 미소만으로도 충분히 소통이 가능하다. 다만 몇 가지 표현만 알아두면 훨씬 수월하다. ‘C”est délicieux(정말 맛있어요)’와 ‘Merci beaucoup(정말 감사합니다)’ 두 문장이면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얻기에 충분하다. 긴장을 풀고 이들이 내미는 음식을 마다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거절하는 순간, 아무리 좋은 의도라도 마을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가 남을 수 있다. 접시에 조금만 담고, 맛을 표현하며 천천히 즐기는 것이 현지 예절이다.
이 축제 일정을 정리하면, 7월 중순의 보리 수확제로 시작해 8월 첫째 주의 대규모 밀 축제, 그리고 8월 중순 이후의 음악 축제로 이어지는 흐름을 보인다. 각각의 축제는 마을의 규모와 역사에 따라 다르게 진행되지만, 공통점은 모든 것이 비상업적이고 공동체 중심이라는 점이다. 도시의 상업화된 이벤트와 달리, 이곳의 축제는 마을 사람들이 1년 내내 기다리는 진정한 의미의 잔치다. 이 잔치에 초대받은 여행자는 프랑스의 문화를 가장 깊이 있게, 그리고 가장 적은 비용으로 경험하게 된다.
결국 프랑스 문화를 제대로 알고 싶다면, 대도시의 박물관과 랜드마크보다 지방의 작은 마을 축제부터 찾아보는 것이 옳다. 비용을 아끼면서도 진짜 프랑스를 만나는 방법은 의외로 가까이에 있다. 다음 여름 휴가를 계획한다면, 지도에서 이 프로방스 산악 마을들을 찾아보는 것을 권한다. 인터넷 검색으로는 좀처럼 나오지 않는 이 축제들은, 현지 관광 안내소에 직접 문의하거나 마을 카페의 게시판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렇게 해서 찾아낸 축제 한가운데 서게 되면, 비로소 프랑스라는 나라가 여행자가 아니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다가올 것이다.